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김훈 / 생각의 나무
<바다개미 후기>
날아가는 솔개나 헤엄치는 물고기는 늘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말하지 않고, 몸으로 솟구치는 저 미물들의 삶은 얼마나 자족한 것인가. 아무래도 말은 몸보다 허술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말은 말을 말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끝없이 주절거린다. 나는 그 허술함의 운명을 연민한다.
행동하지 않는 삶을 반성하는 김훈의 모습이 보인다. 말은 몸보다 허술하고 위태롭다는 말이 가슴을 파고든다. 미래를 고민하는 젊은이에게 따끔하게 다가온다.
말이 되는 말과 말이 되지 않는 말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언어의 외형적 질서에 하자가 없으면 다 말 인줄 알았다....말과 글을 배우는 젊은이에게 말이란 너무나도 유혹적인 것이어서 말하기의 두려움을 함께 배울 여유는 전혀 없었다. 사전에 나와 있는 단어는 모두 끌어다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
정치적 억압에 대응하려는 전투의식이 젊은 날의 언어를 더욱 들뜨고 허성한 신기루로 만들어갔다. 초로의 가을에, 저 젊은 날의 크고 속빈 말들. 현실과 유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윗자리를 고집하던 그 몽매한 열정의 언어들을 돌이켜보면 식은 땀이 흐른다. 밑창이 허하고 받칠 힘이 없어서 뒤뚱거리던, 그 말들은 땅 위에 내려앉지 못하는 눈보라처럼 바람이 불려가서 흩어졌다. 그것은 언어라기보다는 한바탕의 격렬한 무질서와 아우성이었으며 한 시대 황폐의 징후였다.
기자였던 그가 말하는 '말'의 단어는 쉬운 낱말이 아니다. 사전에 나와 있는 모든 단어를 쓸수 없었다는 그의 고백은 언론인으로 그가 느꼈던 한계이기도 하다. 기자는 언어와 사실에 힘을 싣어 목소리를 내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못한 말들은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다니다 사라진다.
'사실'은 아무리 치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 이미 정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여론이 사실을 몰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여론을 이끌고 갈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클린턴의 정액은 입증해주었다.
여론이 사실을 몰고 가다가 그게 사실로 확정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재판에 있어서 자주 볼 수 있다. 혐의 의혹에 대한 수사가 혐의를 저지른 것처럼 보도 되고 검찰의 구형이 재판부의 최종 형처럼 느껴지는 기사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리고 뒤늦게 최종 판결이 사실이 아니였다는 게 밝혀져도 단막기사로 나갈 뿐이다.
사실이 여론을 이끌고 사건의 종결까지 책임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로 비롯된 이 전방위의 권력투쟁은 처음부터 사실관계를 규명하려는 노력보다는 여론몰이의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그들의 혐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입증되기 전부터 '구속 불가피론'과 '구속 불가론'이 서로 적대하면서 부딛쳤다. 그 두 개의 적대하는 여론은 발생한 여론이라기보다는 조성된 여론이었다. 사실의 기초가 없는 이 적대하는 여론 군은 신기루처럼 보인다. 적대하는 진영들은 이 신기루 속으로 또 다시 '여론'을 끌어당기고 있다. 적보다 숫자가 많고 적보가 공격적인 여론을 끌어들이는 쪽이 이 싸움에서 이긴다는 싸움의 방실을 적대하는 진영들은 공유하고 있다.
....이때의 국민은 허수아비와 똑같다. 사실의 기초가 없이 '국민'이 무엇을 판단 할 수 있으며, 이 사실관계를 국민이 판단해야 한다면 검찰은 왜 있고 국회는 왜 있으며 언론은 왜 있는가. "국민이 심판할 것이다"라는 협박은 민주주의의 탈을 쓴 파시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기만들은 대중을 끝없이 무지몽매 속에 처박아 놓음으로써만 가능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조선일보에 대한 세무 조사가 있었다. 그 시절을 본 김훈의 독백이다. 적대하는 양 진영에서 만들어낸 여론에 대한 김훈의 말은 우리가 비판적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언론이 정치색을 가진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하며 기자가 사실만을 보도하지만 어디에 중점을 두는 건지도 의심해봐야 한다. 그렇게 언론이 우리를 감시하고 이끄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감시하고 이끌어야 한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때, 속도와 사람의 관계는 순결하다. 속도와 힘은 오직 다리품을 팔아서만 나온다. 자전거는 엔진이 없다. 자전거의 엔진은 사람의 심장과 허파와 두 다리다. 힘은 인간의 몸에서 나온다. 자전거는 인간의 몸의 한계를 넘는 속도를 낼 수 없지만, 몸의 한계 안에서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자전거의 기어는 사람의 몸속에서 태어나는 힘을 여러 가지 유형으로 재조립해서 뒷바퀴에 전한다. 기어는 도르래의 원리에 톱니의 원리를 결합시킨 기계장치다. 힘을 전달하고 변형시킨다. 근대적 기계공업의 기초문법은 이미 완성된 셈이다. 시계 속의 톱니바퀴는 근대적 대형공장의 모체가 되었다. 16세기의 톱니바퀴들은 우주공간을 흐르는 저 거친 시간을 계량 할 수 있는 단위와 공유 할 수 있는 척도로 바꿔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넣어주었다. 그 후 시계는 가장 획일적이고,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입체적인 언어가 되었다. 유고를 누수는 나토 전술공군의 폭격기도 톱니바퀴가 분할하는 시간의 문법을 거역하지 못한다.
김훈이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몸의 한계안에서 빠르게 달릴수 있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훈이 말하는 자전거와 민주주의 점진적인 발전과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개인이 받아들일수 있는 속도안에서 일어나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
포수가 총을 쏘면 개들은 사냥감을 향해 달려간다. 이때 꿩이 총에 맞지 않았으면 개들은 빈손으로 돌아온다. 빈손으로 돌아온 개들은 쓰다듬어 주고 격려해야만, 명중되지 않는 총소리에도 달려나가는 개가 된다는 것이다. 개에게도 인륜이 있고, 포유류 공통의 정서와 행동원리가 있다. 이것을 견륜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리고 개와 사람 사이에도 지켜야 할 신의와 명치와 범절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개한테 마구하면 개도 사람한테 마구한다.
개와 사람사이의 신의 있어야 비로소 훈련이 되는 것처럼 사람간에도 신의가 있어야 원하는 것을 얻을수 있고 더불어 살수 있다고 말한다.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들의 아름다움으로 화장을 할 수는 없는 것인가. 인간의 내면은 반드시 그 눈빛과 낯빛과 몸가짐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유가는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은 이제 영험하지 못한 관상술 정도로 폄하되고 있다. 그러니 드러남과 보여짐이 완벽하게 분리될 때, 여자들의 자유와 자리가 확보 될 수 있을까. 여자들은 아플 때 아파 보일 자유와 지칠 때 지쳐 보일 자유와 나이 먹어서 늙어 보일 권리가 없는 것인가.
인간의 내면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제일 먼저 보이는게 외모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위 문장에서 내면이 눈빛에서 나온다는 걸 약간은 동감한다. 개인의 눈의 크기나 모양을 떠나 슬픔과 기쁨 등 사람간의 동감능력을 보면 그 사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남성에게 아줌마가 세월 속에서 획득한 이 자유 (사내의 성적 시선을 끓어버린)는 매우 낯설어보인다. 남성에게 또는 아름다운 몸매의 젊은 여성에게, 이 중년 여자의 자유는 다만 성적 수치심의 마모, 혹은 성적 긴장의 이완으로 보여질 뿐이다.
아줌마라는 말은 여성이라긴 보다는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같은 느낌이다. 성적인 매력을 느낄수 없지만 아줌마에게 지켜야 할 가족과 편안함이 있다.
<총론>
김훈이 아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 언론인이자 아버지가 전하는 말에는 행동과 점진적인 노력하라는 말이 들어 있다. 그리고 세상 살이에 비겁하지 말고 당당히 걸어가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다.
세상에 첫 발을 딛는 아들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따뜻하면서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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