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이의 겨울수첩
이외수 / 동문선
<책소개>
이 책은 단순 소설 읽듯이 쭉쭉 읽어면 손해다. 설록차를 먹듯이 우려내는 맛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여러번 천천히 삶이 고달플 때 읽으면 그 어느 조언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책도 한쪽 면은 삽화를 집어넣어 한 페이지 읽고 삽화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가 다음 페이지를 읽어 나가면서 약 석 달 읽으면 좋을 듯 하다.
<바다개미 후기>
그동안 이 세상에서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왜 그렇게도 꼬이기만 했는지. 마치 귀신이 훼방이라도 놓는 것 같았다. 취직도 연애도 장사도 모조리 실패뿐이었다. 받을 것은 하나 없고 갚을 것만 늘어갔다. 날마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자살이라는 말이 실감나지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살아있는 나 자신이 뻔뻔스럽다는 사실 때문에 수시로 극심한 자기혐오에 빠져 들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을 해도 안되는 시기가 있다. 노력이 부족했다는 말로는 실패를 설명할 수 없을 때. 마치 진짜 귀신이 훼방이라도 놓는 것 같을 때,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에 몸부림치며 극심한 자기 혐오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경험을 했다면 약간의 숨통의 트임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작은 것에도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야비성이 필요한 법이다.
더러는 형편을 봐서 재빠른 새치기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적당한 사기도 할줄 알아야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땅을 사고, 빌딩을 짓고, 망할, 그러기 위해서는 때때로 타인을 잡아먹을수 있는 힘과 전술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겸손 따위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도 되었다. 도덕과 양심 같은 건 껍질 뿐이다.
도덕군자로 살라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런 사람을 바보취급한다. 겸손도 나를 지키고 해야 비로소 겸손으로 인정받는다. 나도 지키지 못하는 겸손은 쓸데없는 고집이면 꼴량한 자존심으로 취급받기 일 쑤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약간의 순리와 약간의 야비성이 필요하다.
저 흉학한 바깥세상하고는 상종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학자는 학자답지 않고, 성직자도 성직자 답지 않으며, 심지어는 거지조차도 거지답지 않습니다. 인간이라곤 한푼어치도 없고 자기 합리화에만 급급합니다. 이론으로는 모두들 휘황찬란한데 뚜껑만 열면 악취가 풍깁니다. 한마디로 위선과 가면 뿐입니다.
난 2012년 지금부터 미래로 갈수록 지식인에 대한 로망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이 배우고 많이 안다고 맹목적인 대접을 받는 사회는 지났다. 각자의 역할에서 자신의 일에 얼마나 충실한가로 대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화려한 겉모습을 존경하고 따라가다 보면 위기에 봉착했을때 판단에 기준이 없어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남자보다는 거짓을 말하는 남자의 표정과 목소리가 언제나 진지하다. 진실의 경우는 사실 그대로만 말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지만 거짓의 경우는 없는 것을 꾸며내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이 따른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자신의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커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흔히 여자들은 그 빌어먹을 놈의 진지한 표정에 약하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다 보니 진지함이 솔직함으로 연결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위의 문장처럼 진지함에 경계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무엇을 얻으려는 자에게는 진지함이 필수이다. 사기꾼을 보라. 그 들만큼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진지하게 일하는 사람도 없다.
궁상스러운 얼굴로는 아무것도 성사시킬수 없는 법이다. 하다 못해 구걸만 해도 그렇다. 궁상스러운 얼굴로 손을 내미는 아낙네와 해해 웃으며 손을 내미는 꼬마를 놓고 볼때, 사람들은 누구에게 먼저 돈을 꺼내주고 싶어할 것인가.
어려운 때일수록 쉽지 않겠지만 웃어야 한다. 인상을 쓴다고 어떤 해결책도 생기지 않는다. 인상을 쓰면 보는 사람들도 어려워 하며 떠날 것이다. 쉽지 않지만 웃으며 내 삶에 위로를 건네자.
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 방안을 밝힌다고,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몸을 태우는 쪽은 타인이고 자신은 밝은 방안에 앉아 있는 쪽이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남들에게 따끔하게 해야 될 말은 타인이 하고 그 혜택은 받았으면 하는 사람. 비겁하다. 무임승차로 이익을 얻고자 하고 자신을 태워주지 않으면 화를 내는 사람이 많아진자는 건 우리가 바꿀수 있는게 적어진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라.
책속에는 책을 쓴 이들의 가슴이 있다.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연극을 보라. 예술 속에도 예술 하는 사람들의 가슴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사랑하라.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의 닫힌 문을 여는 열쇠이며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신의 명약이다.
모든 예술은 사람의 영혼을 나타내고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영혼을 보여주는 분야가 예술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술을 즐김으로 써 함께 공유한다는 만족감을 갖는다. 그 예술 뿐만아니라 영혼을 비춰주는 책이나 말도 그 속에는 가슴이 있다.
<총론>
차갑고 추운 계절이 겨울이기도 하지만 눈 내린 겨울은 순수와 결백의 매력을 가진 계절이기도 하다. 이외수 작가가 어려울 때 그를 지탱했던 생각들이 어쩌면 지금의 나와 비슷하지 않을 까 생각한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 인생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면 그건 척박한 땅에 뿌린 씨앗이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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