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싸운 날
시인 박형진
시집 <콩밭에서>중에서
아내와 싸운 날
아주 사소한 일로
그러니까 기나긴 장맛비가 시작되어
오늘은 내방 책상이나 치워보려는데
겁 없이
계획도 없이
다른 곳까지 손을 대다가
꽃밭가에 앉은
꽃밭가에 앉은 아내게
"그러다가 살림살이는 언제 하누?"
불집을 이루고서는 큰소리쳤다.
좋은 청소를 하다가
마음에 나쁜 때를 얹었네 그러니
책상에 앉은 들 고요가 찾아올까
벌떡 일어나 상추밭으로 나아가서
한 바구니 뜯어다 냇물에 씻고
김치 섞어 전을 만들었지
"와 봐, 여기 좀...."
나는 마루 끝에다 삼삼하게 아내를 불렀고
풀린 새 없이 풀린 그 손에 저분을 쥐어주네 이제
함께 술을 한잔 마셔도 좋고
홀로 집 뒤 산길로 산책을 가도 좋다
시야 내일 쓰지
가랑비 실비가 곱게도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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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을 청소하다가 꽃밭에 앉아 있는 아내를 보니
괜스레 싫은 소리가 나온다.
자신만 청소하는게 약이 올라서 그랬을까.
시에서 나타난 남편의 마음이 들때가 있다.
내가 필요해서 일을 하는데도 옆에서 쉬고 있는 사람을 보고 있잖니
괜히 퉁명스런 한마디가 나온다.
그 모습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덩달아 바빠진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 까닭이다.
미안해진 남편이 음식으로 부인에게 사과를 건네면서 고요를 찾아가는 것처럼
괜스레 짜증이 일거나 마음이 여유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차분히 음식을 해서 옆사람과 나누는 건 어떨까.
하나씩 음식을 준비하면서 차분해지고
이야기 하면서 차분해진 마음을 고정시키고
그렇게 다시금 나를 다독거리는 시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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