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SMALL

 

커피자판기

                       시인 조용석

                       시집 <선명한 유령> 중에서...

 

난 돈을 받고 새끼를 낳아줘요

지폐건 동전이건 상관없어요

한밤중 동네 구멍가게들 모두 굳세게 잠을 잘 때

내 몸속은 환하게 빛나요 내 빛을 보면

골목골목에서 나방처럼 손님들이 모여들죠

손님들의 스타일은 제각각이에요.

부드럽게 내 몸을 쓰다듬는 손님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말을 듣지 않는다며 발길질을 하는 손님

아, 나도 성질은 있어요.

주정뱅이나 깡패 놈들에게는

절대 새끼를 주지 않아요.

돈도 주기 전에 내 아랫도리부터 열어젖히면

주르르 새끼들을 쏟아버리죠

찌그러진 동전을 주는 놈도 지긋지긋해요.

목울대가 얼얼해지거든요. 재수 없는 날엔

새끼들이 아랫배에 걸려 죽어요.

내 몸이 썩어버리죠

내 몸이 썩으면 주인은 섬에다 내다 버린다고 했어요

그래도 난 주인님 덕분에 경제를 알았지요

돈을 받을 때까지 몸을 아껴야 하지요

주인님에게 내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어요

원하는 대로 모두 드리지요

주인님이 하루 동안의 수입을 털어가면

난 또다시 희미하게 웃으며 손님을 불러요.

잠시 놀다 가세요 잠을 깨워드릴께요

폐경은 아직 멀었답니다.

돈을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던 친구는

제 주인에 의해 섬으로 팔려갔죠

여기선 나 하나밖에 없어요.

주인님은 손님들이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다며

나를 철창에 가뒀어요.

언제쯤 나 그만 새끼를 낳게 될까요

나를 구해줄 왕자님은 오지 않는 걸까요

개구리라도 좋으니 어서 왔으면 좋겠어요.

 

--------------------------------------

 

자판기를 이리 사랑스럽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요

우리 삶을 보는 시선이 너무 따스합니다.

따스한 맘으로 하루 보내시길.

 

저작권 문제시 바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글에 공감하신다면 엄지손가락을 눌러주세요

저의 새로운 글이 궁금하시면 구독을 눌러주세요.

반응형
LIST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