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자판기
시인 조용석
시집 <선명한 유령> 중에서...
난 돈을 받고 새끼를 낳아줘요
지폐건 동전이건 상관없어요
한밤중 동네 구멍가게들 모두 굳세게 잠을 잘 때
내 몸속은 환하게 빛나요 내 빛을 보면
골목골목에서 나방처럼 손님들이 모여들죠
손님들의 스타일은 제각각이에요.
부드럽게 내 몸을 쓰다듬는 손님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말을 듣지 않는다며 발길질을 하는 손님
아, 나도 성질은 있어요.
주정뱅이나 깡패 놈들에게는
절대 새끼를 주지 않아요.
돈도 주기 전에 내 아랫도리부터 열어젖히면
주르르 새끼들을 쏟아버리죠
찌그러진 동전을 주는 놈도 지긋지긋해요.
목울대가 얼얼해지거든요. 재수 없는 날엔
새끼들이 아랫배에 걸려 죽어요.
내 몸이 썩어버리죠
내 몸이 썩으면 주인은 섬에다 내다 버린다고 했어요
그래도 난 주인님 덕분에 경제를 알았지요
돈을 받을 때까지 몸을 아껴야 하지요
주인님에게 내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어요
원하는 대로 모두 드리지요
주인님이 하루 동안의 수입을 털어가면
난 또다시 희미하게 웃으며 손님을 불러요.
잠시 놀다 가세요 잠을 깨워드릴께요
폐경은 아직 멀었답니다.
돈을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던 친구는
제 주인에 의해 섬으로 팔려갔죠
여기선 나 하나밖에 없어요.
주인님은 손님들이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다며
나를 철창에 가뒀어요.
언제쯤 나 그만 새끼를 낳게 될까요
나를 구해줄 왕자님은 오지 않는 걸까요
개구리라도 좋으니 어서 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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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를 이리 사랑스럽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요
우리 삶을 보는 시선이 너무 따스합니다.
따스한 맘으로 하루 보내시길.
저작권 문제시 바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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