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육식주의자의 죽음
시인 조영석
시집 <선명한 유령> 중에서...
그는 육식을 했지만 사냥할 필요가 없었다.
집밖에 나가면 싱싱한 고깃덩이들이 걸어다녔다.
그가 준비한 나이프의 끝이 닿기만 하면
푸성귀를 먹어 연한 근육들은 결을 따라 쭉쭉 찢어졌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닭이나 어린애 따위는
포크로 찍어 통째로 삼켰다.
담당의는 그만 고기를 끊으라고 충고했다.
진료를 받는 동안에도 그는 송아지의 위를 씹으며
연신 그 속에 남은 여물 찌꺼기를 뱉어냈다.
그는 격렬한 싸움도 없이 먹잇감을 얻었지만
그의 근육들은 발기하는 성기처럼 급격히 굵어졌다.
송곳니만 남고 모든 이빨들이 뽑혀 나갔다.
배꼽에서부터 솟아난 바늘 같은 털들이 온몸을 덮었다.
등뼈가 휘어 땅바닥에 손바닥 자국을 남기며 걸었다.
낮동안 잠을 자고 밤이 되어야 먹이를 찾아다녔다.
먹이들은 각자의 은신처에서 잘 나오지 않아서
떼를 지어 이동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로소 사냥을 시작했지만
점점 고기 맛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시궁쥐라도 한 마리 걸리는 날이면
마지막 남은 뼛조각까지 오래오래 씹어 삼켰다.
어느 밤 담당의는 병원 근처에서 그를 사냥했다.
그는 쓰레기통 옆에 버려진 태아를 뜯어 먹는 중이었다.
담당의는 잘 드는 칼로 그의 가죽을 벗겨 구두공장에 넘겼다.
고기는 부위별로 잘라 갈고리에 꿰어 냉동실에 넣었다.
얼마후부터 담당의는 기름이 줄줄 흐르는 그의 고기를
샐러드에 버무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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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는 사람이 죽는 것은 흡사 고기가 된 것과 같다.
고기를 즐기 던 인간이 고기를 즐기던 인간과 더불어 살다가 고기가 되는 삶
고기로 귀결되는 삶. 인간이 삶이 아닌가 한다.
인간이 태어나 고기의 맛을 알고 고기를 왕성히 즐기다가 서서히 입맛을 잃어가다가 맞이하는 죽음
인간의 삶의 패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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