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이상주의자 - 존밀턴 평전
박상익지음 / 푸른 역사
책소개에 앞서 존 밀턴에 대해 알아 보자.
http://ko.wikipedia.org/wiki/%EC%A1%B4_%EB%B0%80%ED%84%B4
위키백과 소개에 나온 것처럼 그는 급진적인 사상가였고 종교적인 신념에 있어서는 인위적인 전통을 경계하고 성서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종교에 있어 각 개인이 가진 지성을 중시했다.
종교개혁을 위해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깨달은 내가 이때 쓴 책이 바로 <아레오 파기티카>다. 나는 이 책이 후대에 종교개혁 문서로 기억되기를 바란다...종교 개혁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칼뱅이나 츠빙글리가 비쳐준 빛을 더 많은 종교적 진리를 찾는데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개개인이 그 빛으로 자신의 앞길을 비춰가며 진리의 진보를 이룩하는 것, 그것만이 종교개혁을 완성하는 길이다. 그러자면 우리 개개인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각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지금의 블로그처럼 작은 책을 만들어 신학적,정치적 토론은 하던 관습에 따라 종교,언론,정치에 대한 생각은 소 논문으로 집필했다.그리고 밑에서 그의 책 아레오 파키티카에 소개된 내용처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수 있는 환경을 통한 자유를 꿈꾸었다. 그 자유가 종교속에 들어가면 종교개혁이 될것이라 생각했고 이는 한 개인의 노력으로 이룰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빛으로 자신의 앞길을 비춰야 이룰수 있음을 알았다.
밀턴은 <아레오 파기티카> 하단의 내용
국가에 대해서 건전한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렇게 할수 있고 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칭송을 받을 때 그리고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할 의지도 없는 사람이 침묵을 지킬수 있을 때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한나라에 이보다 더 큰 정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자유와 독립을 소중한 가치를 내팽겨친 채, 틈만 나면 전제와 억압의 그늘로 돌아가려는 하는 인간의 이 끈질긴 카톨릭적 본성을 보라. 정녕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카톨릭이란 말인가. 생명이란 이다지도 부패하기 쉽단 말인가. 기득권에 안주하는 그 순간부터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전투적 자세가 필요하다. 전투적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권력, 금력의 유혹에 맞서 싸우며 매 순간순간 낡은 껍질을 벗어던지려는 부단한 노력이 요청된다는 말이다.
그는 이런 그의 신념에 따라 왕정을 반대하고 공화정을 주장했다. 왕의 미움을 사기도 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았다. 그가 책에서 반대한 이유를 보면 권력이 한 개인에게 집중되면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성과 판단을 마비시킨 군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군상들의 등장과 확대는 인간성의 타락은 물론이고 종교적인 타락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카톨릭 국가를 손님 자격으로 방문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행동 원칙을 세웠다. 현지인들과 대화할 경우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이 먼저 "시작"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에 대한 상대방의 "질문"이 있을 경우에는 떳떳하게 자기 입장을 밝히겠다.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건 그는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종교에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음을 볼수 있다. 종교적인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면서 얼마나 사람을 배려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과가 어떻게 되든 신앙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말을 통해서 자신의 신념이 대단한 사람임을 느꼈다.
밀턴의 산문기
제 1기(1641-42):주교제의 폐지를 주장하며 종교적 자유를 위해 투쟁하던 시기
제 2기(1643-45):이혼의 정당성과 출판의 자유등을 논하면서 가정적 또는 개인적 자유를 내세우던 시기
제 3기(1649-60): 찰스 1세의 처형 이후 왕정복고까지 잉글랜드의 공화정을 옹호하면서 정치적 자유를 수호하던 시기
그의 인생은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이혼,출판,정치적 자유까지 그의 자유에 대한 믿음을 그의 삶을 자유로 대변되도록 했다.
칼뱅의 세르베투스 처형은 볼테르의 말대로 프로테스탄티중에서 일어난 최초의 "종교적 살인"이었다. 그것은 프로데스탄티즘 본래의 이념을 부정한 사건이었다. 사실 "이단자"라는 개념 자체부터 프로레스탄티즘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 것이다. 프로데스탄티즘은 모든 사람에게 성서 해석에 대한 자유로운 권리를 인정했다.
먼저 미카엘 세르베투스라는 인물에 대해 살펴보자.
http://ko.wikipedia.org/wiki/%EC%84%B8%EB%A5%B4%EB%B2%A0%ED%88%AC%EC%8A%A4
위키백과의 소개처럼 세르베투스는 스페인 당국의 카톨릭 개종 강요하면서 일어난 많은 추방과 화형등 종교적인 분열상과 성직자들의 도덕적 타락을 관찰하고 연구하여 성서에 없는 삼위일체의 오류를 지적했다. 결국 그는 삼위일체 교리에 반대한 이유로 로마교회와 개신 교회로 부터 정죄를 받고 화형 당했다.
존 밀턴이 그의 생애에서 세르베투스를 이야기 한것은 종교에 있어 이단자라는 개념이 얼마나 잔인할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말로는 성서에 대한 자유로운 권리를 주장하면서 이런 권리가 교단을 위협할때 들어내는 잔인함은 종교의 포용력마저 보이지 않게 하는 법이다.
밀턴에 의하면, 어떤 신학자도 평신도에게 <성경>을 일방적으로 해석해 줄 수 없었다. 오직 신학자의 해석이 그 평신도의 양심(올바른 이성)에 입각한 해석과 일치될 때에만 그 해석은 평신도에게 유용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큰 자유를 꿈꾸는 것이 아닐라 밀턴은 성서를 각자 해석해야만 자신에세 종교가 유용할수 있음을 알렸고 타인의 해석에 의한 일방적인 성서의 해석을 경계했다.
토머스 톰킨스의 저서 <관용의 불편함>은 그의 기질과 성향을 더욱 분명히 짐작할수 있게 해준다. '양심의 자유한 세상에 매우 큰 잡음을 일으키곤 한다. 그것은 일견 아주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제 아무리 훌륭해 보일 지라도, 실제로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은 언제나 이상하게도 통제가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양심의 자유를 얻은 것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해석을 기반으로 행동하라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잡음이 될지 울림이 될지는 행동으로 겪는 감정이 답을 이야기 해줄것이라고 말한다.
<총론>
밀턴은 종교적인 변화를 겪었지만 그 중심에는 양심에 부합하는 자신만의 종교가 있었다. 그 중심으로 생각하고 실천했다. 기록 시대의 흐름과 부합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상을 꺾지 않았다. 그는 종교의 권력화와 인간의 속성에 대해 경계했고 저마다의 종교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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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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