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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시인 김형술
           시집 < 물고기가 온다> 중에서...

한밤중 어둠 속에 깨어 있는 건 굶주린 밤고양이만은 아니다. 누구에게 따귀를 맞은 듯 가위눌린 잠에서 걸어나오면 어디선가 혼신으로 앓고 있는 목소리

바람 일제히 닫힌 창문 쪽으로 불고 겨울 달빛 고드름으로 서 있는 골목길. 허술한 처마 아래 파아랗게 어둠을 응시하는 저 눈빛

제 안의 검은 말들을 태워, 제 몸속 차가운 눈물 줄기를 태워 한 줌 온기로 노곤한 집들의 잠을 지키는 저 조그만 몸 속 반짝이는 수많은 불의 씨앗들

길 잃은 신발의 꿈들 찬 달빛 비껴 잠재우고 어린 밤고양이 허기를 먼 별빛으로 들어 올린다. 허술히 버려진 집 한편에 숨어서 제 몸속 한기로 무딘 온기를 벼리는 저 형형한 눈빛들 꺼지지 않아

온밤 내 거친 잠 속의 불씨들 다독인다. 차가운 지붕을 어루만지며 지상으로 내려오는 순한 별빛들 받는다. 인적 드문 골목마다 일어서는 저 낮고 가열찬 심장의 박동소리

선홍빛. 꽃 내음 나는 새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출처 : 예스24


지금은 아파트가 사는 세대가 많지만 단독주택에 살아본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겨울에 기름보일러가 돌아가는 소리를 돈이 타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건 기름을 태워 온기를 만드는 따스함을 만드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이 시를 읽으며 시인의 표현에 감탄을 했습니다. '특히 3번째 문장 : 제 안의 검은 말들을 태워, 제 몸 속 차가운 눈물 줄기를 태워 한 줌 온기로 노곤한 집의 잠을 지키는 불의 씨앗들'이 내가 바라본 기름 보일러 배관에서 나는 연기였습니다. 시인의 시선은 참 상세하고 귀엽고 내 속의 잠을 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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