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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들
                            시인 최문자
                            시집 <그녀는 믿는 버릇이 있다>

식탁 위에 놓은 붉은 사과
한쪽 얼굴이 빨갰다
나는 사과에게 물었다 피 묻은 빰에 대해서
사과는 아무 말 안 하고 있다.
말이 답답할수록 우리는 바벨의 언어로 말했다
사과와 나는 서로 다른 언어로 말했지만
잠시 후 우리는 금세 알아차렸다.
흔적들은 소리 내지 않고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자세히 보면, 누구나 흔적들로 가득하다
사과가 떠나올 때 울었던 흔적
나무에서 갑자기 잃어버린 어느 한 부분
그 한쪽에 피가 몰렸다.
피 한 방울 없이도 핏 발 선 얼굴로 지냈다.
사과나무속에도 사과가 들어갔던 흔적이 있다.
가슴팍에 머리를 처박고 이별을 버티던
쑥 들어간 부분
사과를 씻어주면 소리 없이 눈물이 고이던 그 자리
아, 생각난다
단칼에 잘라 먹던 사과의 눈물
칼에도 도마에도 묻어있던 사과의 눈물
사과나무가
아팠던 자리마다 다시 사과를 배는 것은
그 자리에 열린 사과가 더 빨간 것은
떠난 사과들의 흔적 때문이다.
흔적들이 다 말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푸른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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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개미 추천>
소리 내지 않고도 말하던 흔적을 발견한 시인의 시선
다음 열린 사과가 더 빨간 것은 떠난 사과의 흔적 때문이라는 시선
이는 곧 말하지 않아도 한 사람을 위해 희생한 가족 혹은 누군가의 노력을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소리 내지 않고도 많은 도움을 주고받고 살아간다.  

받은 도움들이 내 흔적으로 남아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내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
말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흔적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 시의 저작권은 시인에게 있습니다.
* 저작권 문제시 바로 해당 글을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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