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와서 다 죽었다.
시인 유홍준
시집 <별밭에서 지상의 시를 읽다> 중에서...
벤자민과 소철과 관음죽
송사리와 금붕어와 올챙이와 개미와 방아깨비와 잠자리
장미와 안개꽃과 튤립과 국화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
죽음에 대한 관찰일기를 쓰며
죽음을 신기해 하는 아이는 꼬박꼬박 키가 자랐고
죽음의 처참함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아내는 화장술이 늘어가는 삼십대가 되었다.
바람도 태양도 푸른 박테리아도
희망도 절망도 욕망도 끈질긴 유혹도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별일 없냐
별일 없어요
행복이란 이런것
죽음 곁에서
능청스러운 것
죽음을 집안으로 가득 끌어들이는 것
어머니도 예수님도
귀머거리 시인도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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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신기해하던 아이는 꼬박꼬박 키가 자랐고
죽음은 곁에 두고 살아가는 나는 별일이 없어 행복하다.
육체를 떠나 죽음은 감정에 메말라지는 걸 말하는 것이다
식물과 동물 죽음에 슬퍼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우리집에 와서 다 죽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그의 감정은 죽음에 도달해 있다.
아이가 죽음을 보면서 커 간다는 것 또한
한 인간의 성장이 감정의 메아름을 동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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