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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전경린 장편소설 / 문학동네

 

<책소개>

<염소를 모는 여자>,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등으로 가족의 문제, 여성적 삶의 정체성 문제를 특유의 감수성과 감각적인 문체로 묘사해온 전경린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자유로운기질과 탈주의 욕망을 지닌 여주인공 우수련을 통해 세밀한 감각, 절실한 욕망, 생생한 통증 속의 시간으로서의 스무 살을 그리고 있다.

 

 

 

<바다개미 후기>

 

아침이면 늘 같은 자리에서 눈을 떴지만, 모든 방은 섬으로 떠가는 뗏목 같아서, 나는 밤새 물 위에서 처럼 노를 저었다. 말하자면 나는 아직 알 속에서 살고 있는 듯 이 세계에 대해 막연하고 어슴푸레하게, 하나의 추상으로서 둥둥 떠 있었다. 제 속의 노른자위를 파먹으며 한 마리 새가 되어가는 흰자위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밤새 이마를 딛고 지나간 몇 개의 젖은 언어가 비온 뒷날의 꽃잎처럼 가장자리가 찢긴 채 베갯머리에 흩어져 있었다.

 

삶은 방황의 연속이 아닐까. 근데 그 방황을 설명하는 단어가 몇개로 한정되어 있다면 당신의 삶은 단편화되어있는 것이다. 하루의 연속이 노른자위를 파먹으며 한마리 새가 되어 가는 흰자위처럼 오늘이 내일이 나를 만드는 하루가 되기를 모두가 꿈꾼다.  

 

"사소하니까. 지금 나의 생이란 어차피 너무 사소한 걸. 이걸 하든. 저걸 하든. 뭔가를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든 차이가 없어"

"나중엔 차이가 나지. 지금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이. 아주 나중엔"

 

지금의 사소한 행동이 나중엔 차이를 만든다. 아무리 글과 말로 설명한다고 해도 몸소 느끼지 못한다면 모르는 것과 같다. 이 말의 뜻을 아는 것이 어릴수록 당신의 삶의 깊이를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수련아. 지구상의 사람들 육십오 퍼센트가 환생을 믿는단다. 누가 그러는데. 살아생전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는 구나. 그러니까. 지금의 얼굴은 전생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인 거야"

 

"삶을 생각하면 언제나 불길한 예감이 들어.....나를 녹여버릴 화학물질의 냄새가 나....새로운 세계에 가고 싶어. 아주 새로운 세계.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나를 이식하는 거야 그전엔 씨앗처럼 흙속에 웅크리고 숨을 거야. 삶을 시작하지 않을 거야"

"넌 나쁜 꿈을 꾸고 있어. 세계는 언제든 나와 너 자신과 함께 바로 이곳에서 새로워질수 있어. 그걸 위해 우린 싸우는 거지. 그건 새로운 세대의 강박증이지만 청춘의 정의이고 세계에 대한 청춘의 예절이기도 해"

 

현실이 나를 닳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내일의 하루가 한숨으로 대변 될때. 당신은 깊은 물 속에 침몰하고 있는 거 있지도 모른다. 모두의 삶이 매순간 새로울 수는 없겠지만 하루에 일분이라도 당신이 새롭지 않다면 그보다 슬픈 일은 없다.

 

"모르겠어. 내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 다만 그곳으로 조금씩 나를 밀면서 가고 있는 기분....잘못 갈지도 모르고 못 만날지도 모르지....정말 그리울 뿐. 무엇인지 모르겠어.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다만 사는 것 외에는 무엇도 하지 못할수도 있겠지" 

 

"......대부분의 남자와 여자는 평생 하나의 대본의 틀 속에서 갇혀 살아가. 같은 대사. 같은 동선. 같은 감정을 연기하면서....정말 끔찍한 감금 아니니? 난 뻔한 대본속에 갇히지는 않을거야. 진짜 삶은 살 거야. 진짜 삶은 조각조각 찢긴 대본처럼 불안정할지 모르지만, 그런 자신에 대한 발견이야.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 세계와 타인의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와의 소통조차 평생이 걸려도 쉽지 않지. 난 어떻게 사느냐. 무엇이 되느냐. 누구를 사랑하느냐 보다는 나 자신과 소통하는 데에 관심이 생겼어. 넌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이 세계와 타인과 자기사이의 한계를 어느 정도 알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드는 법이지."

 

비슷한 일상속에서 가장 힘들게 다가오는건 어쩌면 삶의 지루함보다도 외로움일지도 모르겠다.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 가족간의 어려움속에서 오는 외로움. 그러나 그 관계는 위의 문장과 같이 한계를 지닌 것이면 그 속에서 완전한 만족이란 찾을 수 없다. 나와 소통하고 얘기하고 나와 함께 하고 위로하는 것이 나의 외로움을 덜어내는 데 더욱 효과적인 치유법이 될 지도 모르겠다.

 

"우리라는 존재는, 시간의 흔적 자체가 아닐까요?"

  

"언젠가 청소년을 상영하는 카운슬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청소년이 내상이든 외상이든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어떻게 충고하느냐고 물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애가 겪은 일이 누구나 겪을 구 있는 일이고, 누구나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자라서 어른이 되고 삶을 살아가는 거라고 안심시키는 일이에요. 문제를 보편화 시킨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났건 너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죠.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자신을 딛고 일어서니까요. 그래서 전 나쁜 일도. 상처도. 원하지 않았던 일도 좋은 일과 마찬가지로 모두 지나가게 될 경험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청소년기에는 얼마든지 기회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게 가장 중요하죠. 그 얘들은 사실 몇 번이고 재생 할 수 있으니까요"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그 것을 직시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처음에 징그럽고 아프더라도 직시하고 나아져가는 과정을 보이는 것 그것만큼 훌륭한 치유법은 없다. 그리고 그 경험은 너의 잘못이나 실수가 아닌 사회가 만든 문제이고 모두 겪을수 문제라고 안심시키는 것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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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가는 것은 단단한 목표나 구체적인 꿈이 아니라 몇 개의 단어와 단어들이 거느린 흐릿한 이미지들. 단어들 사이의 그리움인것 같다.

그 속에서는 타인과의 소통을 넘어 자신과의 소통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밀면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개인 삶에 대한 정의이다.

 

굵은 글씨는 본문의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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