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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대화

               리영희 대담 임헌영 / 한길사

<책소개>

이 책은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일인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스스로 "60% 저널리스트, 40% 아카데미션"이라고 말하는 리영희의 글이 학자들에 의해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로 꼽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치며 삶을 통째로 뒤흔들었던 까닭은 대단한 이론이나 새로운 담론을 제시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직 한국 현대사의 온갖 질곡 앞에서 진실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겼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글쓰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할 이것, 온전한 진실을 써내려간다는 이 기본적이고도 충실한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는 이 의무를 회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야 말로'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여기고 온몸으로 실천했던 것이다.

1970~80년대가 지나고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민주화를 거둔 1990년대 이후 리영희는 "내가 할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책이 더 이상 읽히지 않는 세상을 바란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식인으로서의 역할고 고통 앞에서 그가 보여준 정신의 크기는 왜 우리가 여전히 리영희를 읽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다개미 후기>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곳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우상과 이성](1977) 머리말에서... 

 

진실은 불편할 때가 많다. 소문이 그대로  진실로 판명되는 경우는 적다.

사실관계를 맞추어 가다 보면 일은 사방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이어진 관계를 정리하는 것 그건 그 속의 사람들의 관계를 드러내야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진실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가 아닐까.

  

어려서 뜻을 품고 고향마을을 나왔으니

학문을 이루지 못하면 죽어도 돌아가지 않으리라

뼈를 묻을 곳이 어찌 선조의 묘소뿐이라오

뜻있는 이에게는 세상 어디나 청산이요.

  

뜻을 이루지 못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보다는

뜻있는 이에게는 세상 어디나 청산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뜻을 펼칠 장소를  한 곳으로 규정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는 설사 살면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어렵더라도

자신을 잃지 말고 지금 서 있는 그곳에서 원하는 걸 찾으라는 말이다.

  

..전세계의 피압박 인민의 백인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들에 나는 열정적인 공감을 느꼈어요. 그런 건 지구적이고 전 인류적인 세계사적 대변혁에 관한 뉴스를 만들고 알리고 하는 외신기자로서의 역할에 나는 완전히 몰두했어.  

 

작은 투쟁이 인종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었듯이 언론이라면 투쟁에 대해 연구하고 알려야 한다. 투쟁이라 함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하는 사람의 긍정적 자세이기 때문이다.

  

"네가 무엇을 하든 네 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지는 자세를 견지하라"

"어떠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함께 일하는 동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따위의 비열한 행위만은 하지 마라" 

 

리영희 선생님의 말은 언론인을 떠나 모든이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어려움을 남에게 전가하기 보다는 나에게 잘못이 있지 않았는지 최선을 다했는지 나부터 살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책임을 다하고 이야기 했다면 결과는 나와 세상의 몫이 된다.

  

나는 구체적으로 아주(亞洲- 아시아)국장이 아는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취재를 하는 거지요. 내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상대방이 거짓말도 못하고, 오리발을 내 놓지도 못해. 그래서 국장이 나를 각별히 대해줬어요. 이런 식으로 나는 특종을 계속했지.

  

기자가 많이 알수록 기사는 깊어진다. 깊어진 지식에 현장을 더해 전달하는 기사는 책이 할 수 없는 대중성을 갖는다. 그런 대중성을 즐기면서 책임을 가지고 기사를 쓰는 기자가 있다면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자 선생님이 된다.

  

우리는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 사람이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를 묻기 전에 그사람이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알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면,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 하는 것은 물을 필요가 없다.

 

종교를 묻기 전에 도덕성을 알고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 말의 진실을 알수 있다. 처음에 도덕성 보다 각 종교의 신에게 물어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시간이 너무 걸리고 전달되어 오다가 엉뚱한 답안지를 받을 수도 있다.

  

"남이 자기를 업수이 여기는 것은 먼저 자기 자신이 자기를 욕되게 했기 때문이다. 가문이 흩어지는 것은 남이 그렇게 하기에 앞서 울타리 안에서 형제끼리 싸우고 밖에서 오는 욕됨을 함께 막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라가 기우는 것은 남이 나라를 무너뜨리기에 앞서 그 나라의 군신이 스스로 먼저 나라를 기울게 했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을 보고 '집단의 안부터 살피라'는 말처럼 듣을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보단 집단 안에서 치열한 다툼이 있어야 한다라는 말도 본다.  그래야 내면이 정리되고 정화될수 있다.

그렇지 않고 그냥 가장이나 군신에게만 맡겨 둔다면 그 집단의 속한 사람은 한 사람의 복제품일 뿐이다.

치열한 다툼으로 여러사람의 특징이 모여 집단을 이루어져야 한다. 

그게 한 개인의 문제라면 자아의 성찰과 반성이 치열한 다툼에 해당 할 것이다.

 

<총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발판삼아 진행되어 왔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격동의 시대에 진실을 추구하고자 했던 한사람의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리영희씨가  진정한 언론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실에 대한 태도와 책임감은  내가 기자를 꿈꾸면서 나아갈 지향점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기자가 하나의 지면을 통해서 글을 세상에 내보낼때 기자의 어깨에 대해 생각해본다.

 

 

굵은 글씨는 본문의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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