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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인간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열린 책들

 

 

 

<바다개미 후기>

 

좋도록 생각하네. 그렇지만 내 생각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여간 더 적절한 표현으로

말해 본다면. 아니 무엇 하나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는 나를 나무라겠지만, 그래 이렇게 말해보지, 20년 동안이나 같이 살고 나서도 한 인간을 알수 없는 것이라면, 죽은지 40년이 지난 사랑에 대해서 당연히 피상적일 수밖에 없는 조사를 한다고 해봤자 제한된, 그래 제한 된 것이라고 해야 옳겠지. 의미의 정보 밖에는 얻지 못할 것 아닌다. 하기야 다른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개인의 삶을 안다는 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가족으로 몇십년을 함께 살아다고 한들 개인의 생각까지 모두 공유하지 못했기에 모두 안다고 할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의 삶의 추적하고 의미를 찾는건 피상적이지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의미가 산 자들에게 교훈이나 위로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의미를 찾는 것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이 무거워져서 그래요. 그러다간 가라앉아 버려요

  

몸이 무거워진다는 건 움직임이 적어짐을 말한다. 움직임이 적어지면 개인의 생각의 폭이 좁아지기 쉽다. 그렇게 되면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몸 뿐만 아니라 생각도 그렇다. 혼자만 너무 많은 생각으로 살을 찌우면 다른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다. 그래서 생각도 흐르지 못하고 들어오지 못하는 고집불통의 사람이 된다.

  

카뮈의 저 감동적인 예술론

한 인간이 이룩한 작품이란, 예술이라는 우화의 길들을 거쳐 처음으로 가슴을 열어 보았던 한 두 개의 단순하고도 위대한 이미지들을 다시 찾기 위한 기나긴 행로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이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배경에 하나의 생각을 크게 보여주는 작업이다. 모두 알고 있었지만 크게 인지하지 못하는 사실을 크게 확대하는 일 예술가의 일이다. 사회에 예술가가 많다는 건 우리가 여러 생각을 공유하고 살고 있다는 표시이다.

  

그가 오랜 세월의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 망각의 땅에 사는 저마다가 다 최초의 인간이었다......

열여섯이 되어도 스무살이 되어도 아무도 그에게 말을 해주지 않았고 그는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잠재적 능력만을 지닌채 자라고, 혼자서 자신의 윤리와 진실을 발견해 내고 마침내 인간으로 태어난 다음 이번에는 더욱 어려운 탄생이라고 할, 타인들과 여자들에게로 또 새로이 눈뜨지 않으면 안되었다.

  

모든 인간은 다 어느만큼은 <주워 온 아이>이다. 필연적인 <죽음>에 의하여 삶의 의미가 무화되게 마련이고 모든 인간은 스스로, 그리고 혼자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타인에게로 <눈 뜨며> 다시 태어나야 하는 <최초의 인간>이다.

  

가족과의 삶의 영유를 떠나 모든 인간은 최초의 인간이다. 혼자서 배우고 혼자서 익히고 살아감이 맞다. 친구와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지만 개인이 생각하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모두 소용이 없다.

사람은 최초의 인간으로 태어나 개인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타인에게 영향을 주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일 뿐이다.

  

타파사의 아침 폐허 위에 맺히는 이슬.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된 것 위에 세상에서 가장 젊고 싱싱한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신앙이고, 또 내 생각으로는 예술과 삶의 원칙이다.

  

예술가의 생각은 새로운 것이여야 한다. 처음 보는 것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한동안 잊고 사느라 잃어버렸던 걸 내놓음으로써 우리를 놀래키는 것이 새로운 것이다.

  

그 아이...결국은 언제나 태연한 확신 버리지 않고, 자신만만 그렇지 자신만 가지면 원하는 건 무엇이나 이룰수 있으니까. 이 세상 것이라면 이 세상만의 것이라면 어느 것 하나 불가능한 것 없으니까. 선의를 가지고 치사하지 않게 세상에 다가가면 과연 그 세상을 동화시켜가며, 그 어떤 자기도 욕심내지 않고 오직 기쁨과 자유로운 인간들과 힘과 삶이 지닌 좋은 것. 신비로운 것. 결코 돈으로 살수 없고 사지 않을 그 모든 것만을 원하기에 도처에서 제자리에 있으려고 준비를 하는 그의 삶은 그러하였다.

  

자신만만 삶의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태도가 설사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잠시 좌절할 뿐이다. 그러나 반대로 부정적인 태도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때를 제외하고 인생의 대부분을 짜증나게 살아야 한다. 나만의 자신만만한 태도로 세상을 동화시켜가며, 살아가는 것 설사 미래의 모습이 내가 꿈꾸는 모습이 아닐지라도 걸어가는 내내 즐거움은 클 것이다.

  

<총론>

최초의 인간.

소설의 주인공은 완전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보고 배운다는 아버지는 없고 억척스러운 할머니와 벙어리 엄마 누구하나 자크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수 없다. 가족들이 영향을 안 끼쳤자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식구들은 삶을 함께 영유하기 보다는 살기위해 고된 노동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특히 유교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최초의 인간이라고 하면 극빈층의 자녀쯤이라고 생각할수 있다. 먹고 살아가느라  가족들의 삶의  영유가 힘들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사람은 모두 최초의 인간이다.

 

굵은 글씨는 본문의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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