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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게

             시인 조지훈

             시집 <사상계> 1968년 1월호 중에서..

 

어딜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인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밝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의 외경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그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 없이 흐믓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자네의 손은 내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 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면

그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가게, 이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애기해 보세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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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에게 이렇게 말할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병을 통해 반성하고 가르침을 찾으려는 사람

아마도 많은 세월 질병에 시달리다 체념한 순간 찾아온 평화일 것이다.

 

 

병이란 인간을 굴복시키지만 난 이시에서 처럼

병을 이길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인생을 돌이켜 봤으면 한다.

생과 사는 사람의 영역이 아니지만 받아 들이는 태도는 개인의 몫이다

병을 부정적으로 보기 보단 인생의 쉼표로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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