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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쌀" "재난" "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러한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경쟁/비교의 문화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드리운 불평등의 '깊은 구조'를 이해하려면, 동아시아 사회와 국가가 반복되는 재난에 맞서 싸우며 먹거리(쌀)를 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만든 사회제도와 습속-협업과 위계, 경쟁을 먼저 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중략) 무엇보다. 저자는 특유의 통찰과 독창적인 분석 틀로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차별, 학벌주의, 연공서열과 여성 배제의 구조, 부동산 문제 등 현대 한국 사회에 심각한 분열과 구조적 위기를 일으키는 많은 문제들이 벼농사 체제의 유산들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음을 밝혀 내며 독자들에게 특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출처 : 예스24

 

책 속으로 


P37
* 서열문화와 연공급 위주의 노동시장
(중략) 이 모든 이탈과 간택과 해태의 끝은 무엇일까? 조직의 (상대적) 비효율이다. 이러한 조직 문화를 가진 기업은 동아시아에서는 통할지언정 세계시장에서는 어느 단계 위로 올라설 수가 없다. 개인의 조직에 기여하는 만큼 보상하는 기제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개인이 해태하는 것에 대한 징벌 기제 또한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연공제는 위계에 따른 공동노동과 동원력으로 자본주의 발전의 초기에는 조직의 성장에 기여했지만, 생산성이 어느 순간 정점에 이른 후에는 발목을 잡는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불황과 생산성 저하 경향의 근저에는 연공제의 비합리성과 비효율이 자리 잡고 있다.

P40
*시험을 통한 선발 및 신분 유지와 숙련 무시
  벼농사 생산체제와 더불어 동아시아인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 제도가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과거제요, 즉 '시험'이다. 우리는 시험을 삶의 당연한 준거이자 목표로 받아들인다. (중략) 연공제와 결합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는 신분제적 기제로 자리매김했다. (중략) 숙련도나 현장 기술에 보상하지 않고 시험 기술에 보상하는 이 전통은 동아시아 기업들, 특히 한국 기업들의 입직 및 보상 체계로 자리 잡았고 여전히 공무원과 공기업의 인재 선발 및 관리의 주요한 축이다. 동아시아 관료제와 기업에서 시험은 합격한 자들이 자리와 보상을 나눠 갖고, 합격하지 못한 자는 그로부터 배제시키는 강력한 사회적 장벽으로 기능한다.

P123
벼농사 문화의 개인들은 '집단 속 주체들'이다. 잘 직조된 사회적 관계 속에 놓인 주체들이라는 의미다. 마을 공동체의 공동 노동으로부터 진화한 이 사회적 관계의 밀도는  대단히 높다. 가족과 혈연 및 공동 노동으로 엮인 이웃사촌들과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사적, 독립적 공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벼농사 문화의 개인들은 집단 속에서 어떻게 처신하고 자신의 역할을 완수할지를 어려서부터 학습했다. 이들의 일상은, 부모-자식의 도리, 형제간의 조리, 친족 간의 도리, 이웃 간의 도리로 촘촘하게 짜인 '관계들' 속 의무사항들도 가득 메워졌다.

P134
목초지나 어장 같은 공유경제 시스템의 ' 생산물'은 자연이 선사한 것이지만(따라서 포획량의 제한과 분배의 규칙만 정하면 되지만), 벼농사의 공동 생산 시스템은 협업에 의해 최고 생산 단계에서부터 공동의 노력이 투하된다. 타인의 생산물에 '내 피땀'이 어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확물은 개별 가구에 의해 전유된다. 모내기나 제초작업과 같은 몇차례의 중요한 공동노동에도 불구하고, 거름과 물의 공급은 개인의 책임이고 무엇보다 땅의 소유권이 수확물의 귀속을 결정하는 구조다. 이러한 생산과 소유의 이중구조는 '공정성'에 대한 논란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또한 이 시스템 안에서 개인들은 서로의 수확량을, 서로의 성적을, 서로의 소득을, 서로의 직업과 성공을 수시로, 1년 열두 달, 인생 전체에 걸쳐 비교하고 평가한다. 질시는 바로 이러한 비교에서 싹튼다. 이 비교의 쳇 바퀴 속에서 패배자는 불행해진다. 인생의 행복의 준거가 자기 내면에 있지 않고, 이웃과의 (그들은 당신의 씨족을 포함한다) 관계, 그 관계 속의 비교에 있기 때문이다.  (중략) 벼농사 지역 정주민의 행복은 관계로부터 온다. (중략) 내가 남보다 더 잘났다는 것을 남의 눈으로 남의 입으로 확인받을 때, 동아시아 벼농사 지역의 정주민은 더욱 행복해(뿌듯해)한다.

P177
어쩌면 나의 일탈 행위 때문에 발생할지 모를 바이러스의 확산 못지않게, 그로 인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과 체면의 손산이 더 걱정되는 것이다. 바로 '사회적 조율 시스템'에 조응하지 않아서 (마을)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확진 판정 없이도 이들을 집에 머물도록 이끄는, 궁극적인 행위의 동기자. 따라서 절대다수가 마스크를 쓰고, 대다수가 자가 격리의 원칙을 지키는 상황은 놀라운 상황이 아니다.

P203
벼농사 문화권의 사회조직은 생산과 결부된 재난을 버티고 이용하는 목적에 특화되어 있다. 집단적으로 재난에 대처하며 공동체의 목적을 달성하는 동아시아 생산 조직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은 톱니바퀴처럼 긴밀하게 움직이는 조직의 일부로서 의미가 있다. 태곳적부터 동아시아의 개인은 위계와 규율에 따라 작동하는 마을 공동체 조직의 부속품이었다. 근대의 개인 주의자에게는 이 시스템이 불편할 것이다.

P262
신분제, 가족주의, 땅과 자산에 대한 집착은 벼농사 체제(공동노동- 개별 소유 시스템)의 직접적 산물은 아니지만, 벼농사 체제와 맞물린 채로 동아시아 각국에 다른 형태로 그 제도적 뿌리를 내렸다. 가족주의와 땅에 대한 집착은 가족 단위 교육과 자산 투자 경쟁으로 이 분단과 경쟁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화시켜 왔다. 이 전근대의 유산은 오늘의 한국인들이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원하는 배제와 선점의 기술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삶의 목표다.

P271
부동산 자산의 축적은 , 고소득층으로 하여금 '사회보험'을 통한 위험관리의 필요성을 없애는 동시에 복지의 정의를 '보편적 시민권'이 아닌 '위험에 (이미) 심하게 노출된 저소득층'으로 한정하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바로, 재난에 노출된 피해자만 구휼해 주면 된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중략) 이는 더 나아가. 한국의 복지 국가가 북유럽식 보편적 사회 안전망이 아닌, 영미권 복지 모델인 선별주의적 '사회모델'로 귀결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중략) 자산 투자를 통한 사적 자산의 과도한 증식을 막고 공적 연금/ 보험 체계를 통한 노후 안전망을 시급히 마련하지 않으면, 광범위한 중산층이 참여하는 '보편복지 국가의 수립'은 다시금 요원해질 가능성이 크다.

*연공급 대 직무급
P356
해결책은 간단하다. 단기적으로 임금피크제를 통해 고연차의 40대, 50대에게 돌아가는 보상을 줄여야 한다. 임금 테이블의 기울기를 평탄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장기적으로 현재 입직자 대비 30년 차의 임금 수준이 평균 3.3배인, 연공제 임금 테이블의 기울기를 낮춰 2배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

P364
오늘날 청년 세대가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질 좋은 일자리가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 연애를 하고 말고, 아이를 낳고 말고는 그 다음 이야기다 (그들이 선택할 문제다). 나를 건사해야 재 생산에 대한 생각이 싹트고, 아이의 미래가 낙관적이어야 낳아 키울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오늘날 청년 세대 상당수은 안정된 일자리를 갖지 못한 탓에, 이 선택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중략)
연공제를 역사 속에 묻고, 새로 도입 될 직무평가와 보상 시스템은 더 많이 일하고, 더 일 잘하고, 조직에 공헌도가 놓은 사람, 즉 직무의 숙련도가 놓은 자에게 더 높은 보상을 하되, 그 보상으로 인한 새로운 불평등이 협업 문화의 근간을 자극하지 않는 수준에서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21세기 한국형 임금 시스템은 직무와 숙련에 보상하되 직무와 숙련 간 차이가 과도하게 벌어지지 않도록 관리함으로써, 공정과 평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바다개미 후기>

동북아 쌀 경작문화는 공동노동 - 개별 소유라는 구조 속에 갇히게 했고 끊임없이 남과의 비교를 통해 나의 위치를 확인하게 했고 남보다 뛰어나려는 노력등으로 예전으로 과거제가 있었듯이 경쟁을 부추긴다. 따라서 지금은 시험을 통한 정규직, 비정규직의 장벽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50-60대의 세대의 경우는 쌀문화에서 파생된 연공제의 혜택으로 많은 보상 시스템으로 부동산을 축적했다. 그러나 그 축적된 자산을 이어받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경우는 불평등 구조속에 갇혀 나를 건사해야 하는 위험에 놓인다. 저자는 연공제는 역사에 묻고 숙련도에 따라 보상하되 그 보상으로 인한 불평등이 협업 문화의 근간을 자극하지 않는 수준에서 조정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을 덮으면서 우리가 원하는 복지가 보편적인 복지인지 선택적인 복지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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